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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24 푸른 요정을 찾아서(인공지능과 미래인간의 조건)




목차


1장. 인간다움의 조건
이방인 / 기계의 진화 / 인간의 지위 / 영화에서 제기된 문제들 / 새로운 족의 탄생?! / 관점의 전환 / 해결해야 할 과제

2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인간이다?
문제의 본질 / 이율배반 / 왜 두뇌는 안 되는가? / 정신의 부활 / 정신과 물질 / 유기체적 세계관 / 패러다임의 전환 / 정신이 물질과 달라 보이는 이유들 / 정신이 곧 물질? / 왜 이원론인가? / 인간 지위의 몰락 / 진화론적 세계관 / 진화론의 보완

3장. 물질은 생각한다!
정신과 두뇌의 관련성 / 시장의 우상 / 데카르트의 유산 / 문제 해결의 단서 / 마음과 몸은 같다 - 동일론 / 실체와 성질 / 마음과 몸은 유형이 서로 같다 / 치명적 결함 / 두뇌의 유연성 - 환상지 / 기능주의라는 새로운 대안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 복수실현가능성 / 유물론으로서의 기능주의 / 수반논제 / 인공지능 / 인공지능의 정의 / 강한 인공지능과 약한 인공지능 / 퍼지이론 / 기계적 세계관의 완결 - 잠정적 중간 결론 / 계산을 통한 정신 이해의 역사 / 쉬어 가는 내용

4장. 인공지능,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
컴퓨터란? / 원조 컴퓨터 /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 형식논리학 / 의미의 문제 / 의미의 기호화 / 타인의 마음 / 튜링 테스트 / 중국어 방 논변 / 시스템 반박 / 사유시럼은 신뢰할 수 있는가? / 인공지능은 상식을 필요로 한다 / 연결주의 / 학습 가능성과 로봇의 진화 / 계산주의의 실패?

5장. 로보 사피엔스, 친구인가 적인가?
과학의 지위 / 과학의 오용 / 흄의 길로틴 / 과학의 계몽적 역할 / 도덕의 자율성 / 도덕적 패러다임의 전환 / 진화론과 동물의 권리 / 도덕적 수혜의 조건 / 감각질의 문제 / 전도된 스펙트럼과 철학적 좀비 / 감정 / 푸른요정을 찾아서 / 감각의 본성 / 감정의 기능 / 도덕적 행위와 인간 존엄의 조건 / 왜 이성인가? / 본성으로서의 도덕 / 이성과 도덕 / 새로운 차원으로서의 비상 / 결론 / 사족

6장. 생물 이후의 시대
인공지능의 꿈 / 왜 인공지능을 꿈꾸는가? / 기술 문명의 디스토피아 / 마음의 아이들 / 자비로운 매트리스 / 우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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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공지능의 꿈 

“푸른 하늘 저 멀리 랄랄라 힘차게 날으는 우주 소년 아톰”이 살던 시대는 지난 2003년 4월이었다. 1952년 SF만화 캐릭터로 태어난 로봇 아톰이 만화 속에서 활동하던 미래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우주를 날며 외계의 적들을 물리치던 소년 아톰의 나이는 벌써 56세가 됐지만 아톰은 여전히 아담한 크기의 꼬마다. 늙지 않는 아톰에게 꿈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한때 아톰은 자신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 고민은 어린이의 영원한 친구 피노키오의 고민과도 같은 것이었다. 바로 피노키오와 아톰 모두의 꿈이기도 한 인간이 되는 것.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는 인간이 되기 위해 푸른 요정을 찾아 나선다. 도대체 인간의 기준은 무엇일까? 힘이 센 것이 기준이라면, 아톰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거짓말을 할 줄 아는 능력이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능력, 그도 아니면 꿈을 갖는 게 그 기준이라면 피노키오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이 있을까?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레플리컨트를 통해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다. 21세기의 인류가 대답해야 할 질문,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인간의 몰락―생각을 하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 

지금까지 수천 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인간이 받아들여야 했던 몇 가지 진실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동설과 진화론일 것인데,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는 이미 역사를 통해 알려져 있다. 토마스 쿤은 이러한 충격을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불렀다.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혁명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혼란기에 빠졌는데, 그것은 세상의 중심에 서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외쳐왔던 인간의 지위가 하나씩 추락했음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인간이 원숭이와 먼 친척뻘이라는 진화론에 이어, 마징가Z와 아톰이 인간의 친구를 넘어 후손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은 끊임없이 인간 정신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두고 고민해왔다. 20세기에 등장한 컴퓨터는 인간 정신 역시 물질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만약 우리가 튜링의 예언처럼 인간과 구별 불가능할 정도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아마도 인간 정신은 자신의 특별한 지위에서 다시 한 번 물러나야 할 것이다. 

로보 사피엔스,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자연적 인간에게 생명은 한 번 뿐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신화시대로부터 과학시대까지 관통하는 인간의 숙제였다. 만약 우리가 유기적 신체 장기를 기계 장기로 교체하고, 마침내 자연적인 신체보다 훨씬 관리가 수월한 기계적 신체로 우리 몸을 바꿀 수 있다면, 그래서 어느 순간엔가 우리의 기억을 담고 있는 뇌도 수시로 수리 가능한 기계로 바꿀 수 있다면, 그래서 영생을 꿈꿀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최초이자 가장 심각한 실존적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로봇을 그 이름의 뜻 그대로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전자제품쯤으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목표 또한 자연지능, 즉 인간의 지능을 모사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가 “봉사하는 것은 언제나 저의 기쁨 입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착각이자 로망이 아닐까? 영화 <에이 아이>의 결말부분이나 <매트릭스>의 상황이 그저 ‘공상과학’이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생물 이후의 시대 우리의 선택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생명의 본질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다. 마침내 그 수수께끼가 풀리고, 인간의 조건마저도 통제할 수 있는 시점이 온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롭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인간적인 것이고, 또 그런 인간에게 행복의 조건은 무엇이고,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낡은 패러다임 안에서는 의문시되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새로운 의미를 갖고 중요한 질문으로 등장한다. 페미니즘 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사이보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의 나날들 중에 하느님은 아담에게 살아 있는 피조물들에게 이름 붙이는 권리를 허락하신다. 이름 붙임은 이름 붙이는 자의 지배적 권리의 증거이다. 그렇게 인간은 창조된 세상의 주인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과연 인간은 계속해서 지구를 지배할 수 있을까? 

급진적인 심층생태주의자들은 인간이야말로 지구 환경에 치명적인 부담을 안겨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전 지구적 멸종상태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인간의 생존방식이 지목되곤 한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그런 부담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무익한 지배자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간보다 더 잘 생각하고, 인간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에너지 이용체계를 가진 우리의 기계적 후손이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우리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과연 인간은 계속해서 지구의 주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Posted by dean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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