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샌드라 블레이크스리 (지은이), 신상규 (옮긴이) | 바다출판사

원제는 Phantoms in the Brain (두뇌 속의 유령)이란 멋진 제목입니다.
마지막 번역 원고를 넘기고,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받아 보았더니 정말로 뜬금없이 책 제목이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로 바뀌어 있더군요. 경악스런운 제목이지만, 책 내용은 읽을만하고 특히 라마찬드란의 인문학적 양식에 놀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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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찬드란, <뉴스위크>가 뽑은 211세기 가장 주목해야 할 100인 가운데 한 명.
출간된 첫해에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선정.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통증을 호소한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정신력마저 의심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마음이 신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만큼 얼토당토않은 믿음도 없다. 뇌과학자들은 모든 통증을 마음 하나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환자들에게 모욕적인 말은 없다고 말한다.

사고로 한쪽 팔을 읽었지만 계속해서 환상 팔이 움직이는 생생한 감각을 느끼는 아마추어 운동선수, 뇌졸중을 겪은 후 웃음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사서의 이야기. 또 머리에 끔찍한 중상을 입은 후 자신의 부모가 복제인간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한 젊은이. 그는 부모의 얼굴을 알아볼 수는 있지만, 친숙함은 느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현재의 부모가 가짜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매우 기이한 행동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이들 중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을 정신과 의사에게 보이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사지를 느끼며, 아무도 보지 않는 대상을 보게 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부정하면서 엉뚱하고 비정상적인 주장을 한다. 그러나 여타 대부분의 것에 대하여 이들은 누구보다 이성적이며, 이 책을 읽게 될 당신과 비교하여서 전혀 미치지 않았다.

뇌과학계의 ‘셜록 홈스’라고 불리는 라마찬드란은 이 책에서 그가 해결한 가장 이상한 사례들과 함께 그것들이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통찰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면봉이나 거울과 같은 원시적인 도구를 이용해, 사라진 팔이 실재한다고 느끼는 환자에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환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경병 환자들을 연구한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그 어떤 과학자도 감히 도전하지 않았던 인간 본성의 심오하고 미묘한 질문들에 답한다. 우리는 왜 웃거나 우울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며, 또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꿈을 꾸는가? 우리는 왜 신의 존재를 믿는가?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마지막 남은 의학적 미개척지에 대한 의학적 탐사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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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은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신경학 책이다.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지은이)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프랜시스 크릭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당신이 두뇌에 관해 읽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책일 것이다. - 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

가설을 시험하는 간단하면서도 매우 멋진 그의 실험들은 독창적이다. 올리버 색스의 애호가라면 최근 대중적인 과학책 목록에 추가된 이 책의 내용 속으로 흠뻑 빠져들 것이며,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될 것이다. - 라이브러리 저널

이 책은 두뇌와 라마찬드란 둘 다에 관한 책이다. 라마찬드란은 정말로 멋진 주제이다.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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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ous forms of relativism, sometimes under the label of "postmodernism", have attacked the idea of rationlaity as such. Rationality is supposed to be essentially oppressive, hegemonic, culturally relative, etc. ... I am as appalled as anyone by these attacks, but I do not bother to answer them because I do not believe they can even be made intelligible. For example, I have sometimes been challenged, "What is your argument for rationality"--a nonsensical challenge, because the notion of "argument" presupposes standard of rationality. This book is not a defense of rationality, because the idea of a "defense" in the form of argument, reasons. presupposes constraints of rationality, and hence the demand for such a defense is nonsensical. ... One can intelligibly debate theories of rationality, but not rationality.

(John Searle, Rationality in Action, xiii-x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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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책 <로보사피엔스>에 대한 소개입니다. 출판사는 김영사입니다. 출판사 홈피에 올라와 있는 책 홍보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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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사진: 피터 멘젤(Peter Menzel)
글: 페이스 달루이시오(Faith DAluisio)

<보도 자료>

로보 사피엔스 - 명사(자동제어에 의해 움직이는 장치를 뜻하는 영어의 로봇robot과 인류를 뜻하는 라틴어의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유래)
1. 순전히 생물학적인 인류보다는 훨씬 우월한 지능을 가진 인간과 로봇의 혼합종:21세기에 출현하기 시작
2. 지구를 중심으로 한 태양계의 지배적인 종족

호모 사피엔스에서 로보 사피엔스로,
새로운 종의 진화를 주도하는 로봇공학자들의 연구실을 기습하다!
신인류의 탄생을 예고하는 차세대 지능형 로봇의 모든 것!
로봇공학의 현주소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내다본다

세계 최고의 로봇 전문가들과의 진지하고 흥미로운 인터뷰와 함께 로봇공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담은, 세계 로봇공학 분야의 대표적인 대중서가 마침내 출간되었다. 과학 기술 분야의 세계적인 사진가 피터 멘젤과 저명한 미국 저널리스트 페이스 달루이시오가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로봇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내는 전세계의 연구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진행하는 로봇들의 모습을 담아 탄생시킨 책 『로보 사피엔스』(김영사 발행)가 그 책이다.
이 책은 차세대 지능형 로봇들과 그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 책은 백 대 이상의 로봇들에 대한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로봇공학 개척자들과의 광범위한 인터뷰, 로봇 프로젝트 막후의 일화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현장 노트”,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로봇들에 대한 기술적인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어, 첨단 기술 매니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며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라는 용어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 곧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언젠가는 문자 그대로, 혹은 상징적인 의미로 우리 인간의 창조품인 로봇으로 진화해갈 것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어떤 로봇학자들은 기계는 결코 인간의 능력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또 다른 로봇학자들은 결국에는 로봇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믿는다. 제3의 학자들은 이들 과학자들이 모두 틀렸다고 주장한다. 로봇이 인간에게 뒤처지지도 않을 것이며, 인간을 제압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에 호모 사피엔스 고유의 의식과 거의 무한히 영속적인 로봇의 몸을 전자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인간이 로봇이 되는 로보 사피엔스가 출연한다는 것이다. -21쪽

이 책의 제목에서 의도된 바는, 인간의 삶이 거역할 수 없이 로봇과 공존할 것이며, 나아가 우리의 신체뿐 아니라 의식 활동조차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로보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되리라는 이 책의 결론을 반영하고 있다. 전세계 로봇 공학의 현장을 방문하고 과학자들, 기술자들, 로봇 매니아들을 만나면서, 공상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실제로 어느 정도로 로봇에 의지하게 될 것인지를 체험하여 내린 결론인 것이다.

첨단 로봇공학이 예언하는 인류의 미래, 그 빛과 그림자를 포착한 책

로봇공학은 아직 어린 학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문명을 엄청난 방식으로 변화시켜 놓을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서 다양한 로봇의 발명가들은 자신들의 야망과 기대와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로봇과 로봇공학자들을 보여주는 현장감 넘치는 탁월한 사진들은 매우 생생하여 사람들과 로봇들의 매력적이고도 소름끼치는 면모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깊이 있으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인터뷰는 독자 자신이 로봇 연구의 현장에서 그들을 만나는 기분에 빠져들게 할 뿐만 로봇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며,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로봇 전문가들의 심중을 잘 드러내고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세계적인 로봇 전문가들의 다양한 예측과 가능성을 개괄하고 있고, 3장에서는 생물체를 모방한 로봇, 나아가 인간의 생체 시스템을 모방한 생체 모방형 로봇들을 살펴본다. 4장에서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곧 다가올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로봇들을 연구하고 있는 이들을 만난다. 5장에서는 가정과 직장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줄 로봇들을 연구하는 현장을 찾아가고, 6장에서는 로봇을 오락용으로 즐기는 세계 곳곳의 로봇 매니아들을 찾아가본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독자들은 단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로보 사피엔스의 출현을 예감하며 막연히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도 낯선 미래가 임박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공상과학 속의 이야기, 어떻게 현실로 드러날까?

로봇은 이미 많은 면에서 인간을 앞질렀다. 로봇은 인간보다 정확하며 빛이 없이도 하루 24시간을 일하며, 아픈 일도 없고 노조를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이런 산업용 로봇들은 일반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람들은 로봇에 대해,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모종의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청소용 로봇, 잔디 깎는 로봇 같은 도구로서의 로봇보다는 사람과 같은 모습과 지능을 가진 로봇을 원한다.
그러나 로봇공학에서 지능의 문제는 골치 아픈 문제다. 많은 과학자들은 50년 내에 로봇들이 인간의 지능을 훨씬 앞지르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어떤 사람들은 로봇이 스스로를 복제하여 인류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문제는 인간의 지능의 본성과 관련한 기본적인 문제이다. 과학자들이 어떻게 인류 멸종의 중개자가 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일이 가능할까? 이 책에서는 인간의 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어떤 결과물을 낳게 될지를 예측하게 해주는 로봇 연구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이 로봇공학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는 사례도 흥미롭다. 일례로, 데즈카 오사무가 그려낸 착한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영화 <아톰>을 보고 자라난 세대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에 몰두하고 있는 일본의 로봇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는가 하면(그들 중 일부는 실제 만화영화에서 아톰이 탄생한 2003년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인간의 파괴 욕구와 첨단의 과학기술이 만난 파괴의 향연 “로봇전쟁(robot war)”에 참가하는 로봇 매니아들의 광적인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놓쳐서는 안 될 책
로봇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로봇 엔터테인먼트 북


이 책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성찰에 도움을 주는 책이다. 또한 과학·공학 분야뿐 아니라 인문학과 예술, 미래학, 영화, 애니메이션 분야 등에 새로운 영감을 줄 책이다. 한편 기술 관련서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즐겁게, 로봇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이다. 마치 박물관에서 안내 가이드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로봇 스위트 립스(Sweet Lips, 220쪽)가 박물관에 한번도 오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을 박물관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듯이.
이 생생한 로봇들과의 만남 이후에 독자들은 영화 , <바이센테니얼 맨> 등에서 그리고 있는 지능형 로봇 연구의 미래가 어느 만큼 현실로 가까워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매트릭스>, <공각기동대>가 그리고 있는 암울한 미래적 공상이 결코 공상만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예감을 가질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최첨단 로봇들의 연구 성과를 소개해놓은 책이 아니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 속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첨단 로봇 기술의 내막을 속속들이 파헤치면서, 진정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제기해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로봇공학자들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인류의 삶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인간의 모습으로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 같은 물음에 깔린 불안과 두려움이, 이미 상당한 진척과 고민과 좌절이 축적되어온 로봇산업과 로봇공학의 현장을 담은 이 책의 화두일는지 모른다. 로봇이란 말이 탄생하면서부터 계속되어온 오랜 질문들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독자들은 자연스레 인류의 미래가 단순한 비극적 종말론보다는 자연적 진화의 방향과 유사한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예측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이런 미래에 대해 아무런 실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실상 로보 사피엔스 시대 이전의 마지막 호모 사피엔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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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tgenstein: The Darwinian theory has no more to do with philosophy than any other hypothesis of natural science. (Tractatus, 4.1122)

Marx: Darwin's book is very important and serves me as a basis in natural selection for the class struggle i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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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윌리암스(Bernard Williams)는 Ethics and the Limits of Philosophy 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 합니다.

What distinguishes analytical philosophy from other contemporary philosophy (though not from much philosophy of other times) is a certain way of going on, which involves argument, distinctions, and, so far as it remembers to try to achieve it and succeeds, moderately plain speech. As an alternative to plain speech, it distinguishes sharply between obscurity and technicality. It always rejects the first, but the second it sometimes finds a necessity. This feature peculiarly enlarges some of its enemies. Wanting philosophy to be at once profound and accessible, they resent technicality but are comforted by obsc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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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얼마전 김재권님의 수반철학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철학과 현실사에서 나온 <수반과 심리철학>(철학과 현실사,1994년)이란 김재권님의 논문집이였던 걸로 기억하고요.
> 그러나 비인관적 연관이란 주제가 흥미있어 읽으려고 노력은 했지요. 그중 가장 궁금한 것이 거의 매논문마다 켐브리지사건이란 것이 나오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캠브릿지 사건 또는 캠브리시 변화에 대해 그래도 가장 구체적인 설명이 있는 곳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위의 책 50쪽에 나오는 구절인데요,
>
>한 F-사건은 피터 기치가 다소 냉소적으로 "단지 캠브리지 변화"라고 부른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 만일 어떤 대상에 대해 한 때는 참이지만 나중에는 거짓인 술어가 있으면, 한 "캠브릿지 변화"가 발생했다고 말해진다.(기치에 따르면, 이것은 러셀과 맥타가아트같은 저명한 캠브리지 철학자들에 의해 옹호된 "변화"의 기준이었다.)따라서 모든 진정한 변화는 캠브리지 변화이지만-최소한 술어에 의해 표상가능한 것들-그것의 역은 분명히 참이 아니다.


답변:
캠브리지 사건은 김재권의 논문집 Supervenience and Mind의 두번째 논문인 "Noncausal Connection"에 언급되어 있군요. 먼저 이 논문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김재권은 사건이나 상태간에 비인과적인 결정관계가 성립함을 주장하며, 이러한 비인과적 관계의 다양한 구조를 살피고 있습니다. 흔히 보편적 결정론이라 할때, '모든 사건은 원인을 갖는다'라는 식으로 기술되어, 사건간의 결정관계는 전부 인과적인 것이라 치부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김재권은 비인과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사건간의 다양한 관계가 존재하며, 이런점에서 세계는 인과적 결정론의 그림보다는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비인과적 결정관계들은 여전히 결정론의 주장안에 포섭될 수 있어서, 인과적 결정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결정론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김재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크산티페가 과부가 됨'이라는 두 사건간에 성립하는 관계를 비인과적 결정관계의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습니다. '크산티페가 과부가 됨'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의해 결정되는 관계를 그는 '캠브리지 의존(dependence) 혹은 결정(determination)'이라고 부르고, '크산테페가 과부가 됨'이라는 사건을 '캠브리지 사건(event) 혹은 변화(chang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논문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캠브리지 변화'는 피터 기치가 사용한 용어인데, 어떤 한 대상이 있을때, 한 시각에 어떤 술어가 그 대상에 참으로 적용되고, 다른 시각에 거짓이라면(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대상에 '캠브리지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해집니다. 기치(Geach)는 대상에 대한 술어의 적용여부를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규준으로 삼는 이런 생각이 러셀이나 맥타가르트 같은 캠브리지 철학자들에 의해 옹호되었기 때문에, 약간은 비꼬기 위해 이런 용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변화에 대한 이런 규준이 우리가 갖고 있는 일상적인 변화의 개념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가는, 다음과 같은 김재권의 예를 보면 명확해집니다. 어떤 장소에 A라는 대상이 있고 이 대상을 불로 가열한다고 합시다. A가 있는 장소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B라는 대상이 있고, 우리는 B에 대하여 순전히 A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그 적용의 참 여부가 결정되는 속성(혹은 관계)술어 F를 고안할 수 있습니다. 가령, 남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어떤 대상이 불로 가열되고 있을 때만 술어 F는 대상 B에 참으로 적용된다는 식으로 술어 F의 진리조건을 기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A가 불로 가열되는 시점에, 술어 F는 B에 참으로 적용되기 시작하여, 캠브리지 철학자들의 규준에 의하면 대상 B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직관에 따르면,B에는 실질적인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단지 A에 대해 성립하는 순전한 관계적 성질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기치는 이런 변화를 '단순한 캠브리지 변화'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보면 캠브리지 변화는 우리의 일상적인 (실제적;real) 변화의 개념보다는 훨씬 넓은 개념이 되어 버립니다. 모든 실질적인 변화는 캠브리지 학자들의 규준에 의해서도 변화로 인정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캠브리지 변화는 "대상에 발생하는 실질적인 변화 + (단순한 캠브리지 변화라 부를 수 있는) 순전히 관계적 속성의 변경에 동반하는 변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쉽네요.

(과연 러셀같은 이가 이런 비판을 쉽게 수용할지는 의문입니다. 변화의 규준으로 사용될 수 있는 술어들에 어떤 제한을 덧붙이는 식으로 이런류의 비판을 논박하려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그러한 술어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문제가 될 것이고, 순환성이나 논점 선점의 오류등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겠지요.)


어쨌던 김재권은 '캠브리지 변화'라는 개념을 기치로부터 빌려와서, 실제적인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캠브리지 변화' 즉'단순한 캠브리지 변화'에 기초하는 사건간의 의존, 결정 관계를 '캠브리지 의존 혹은 결정' 관계라고 부르고, 캠브리지 의존관계에 의하여 발생하는 사건을 '캠브리지 사건'이라고 부르고있는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해 '크산티페의 과부가 됨'이라는 사건이 의존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한 결정관계라는 것이지요. '크산티페가 과부가 됨'이라는 사건은 크산티페라는 대상에 아무런 실제적 변화가 없이 단지 소크라테스에 대해 갖는 관계적 속성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발생하는 사건입니다. 그런 점에서 '크산티페의 과부가 됨'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캠브리지 의존'하여 결정되는 '캠브리지 사건'이 됩니다. 김재권은 이러한 의존, 결정 관계는 의연히 비인과적인 결정관계로서, 인과적 관계와 더불어 세계 혹은 사건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부'라는 속성은 사회적 규약에 의해 성립하는 관습적 속성입니다. 이러한 속성이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기초적인(basic)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여러 물리적 성질들과 함께 동열로 취급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재권은 이 논문의 결론부분에서 '기초적인 사건', 혹은 '실제적인(real) 사건' 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과부됨'이라는 것이 과연 하나의 사건으로 취급되어져야 하는가 등등의 질문을 모두 오픈되어있는 질문으로 남겨둡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들을 먼저 답하지 않고, 다시 말해서 '캠브리지 사건'이라는 것이 정말 세계를 구성하는 실제적인 사건인지를 논하지 않고, 이러한 캠브리지 사건 혹은 의존관계가 인과적 관계와 마찬가지로 세계 혹은 사건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뭔가 모르게 조금 공허해 입니다.)

(200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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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운정역

일상의 기억 2011. 4. 15. 06:43
2007년 4월 14일 다른 블로글에 올렸던 글과 그때 찍어둔 사진이다. 이제는 경의선의 복선화되고, 사진 속의 운정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직장도 바뀌어, 이제는 서울역이 아니라 신촌역에서 하차한다. 지금은 임시역사이지만 새로운 운정역이 6월이면 완공된다고 하니, 그때의 사진과 아래의 사진을 비교하면 정말 상전벽해일 것이다. 그와 함께 나도 늙어 간다는 것. ㅠㅠ


"대학교를 다닐 때 신촌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백마로 놀러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지금은 일산 신도시가 들어섰지요. 당시만 해도 백마라는 곳이 신촌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이었습니다. 운정역은 백마역에서 일산과 탄현을 지나면 나오는 역입니다. 역사가 아직도 양철지붕으로 되어 있는 간이역입니다. 넉넉하게 생긴 역장님이 한 분 계시고, 퇴근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허이'하며 손을 들어 맞이해 주는 곳입니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너무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 주부터 기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왜 진작에 기차를 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들 정도로 기차 통근은 매일 매일이 즐거운 여행입니다. 일단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교외 풍경을 구경하며 지나가는 것이 사람을 넉넉하게 만들어 줍니다. 서울역에서 학교까지는 매일 걸어다니는데 따로 시간을 내어서 운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황사와 매연입니다. 가능한 매연을 피해보려고, 지금은 만리동 고개 귓골목을 지나서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경의선 복선화 공사가 끝나고 나면, 정겨운 운정역도 아마 근대식 역사로 바뀌면서 지금의 통근 열차라는 것 자체가 없어지겠지요. 전에는 하루라도 빨리 경의선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지금은 왠지 그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서운한 감정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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